사라질 가치가 없는 존재를 위한 영화, ‘파과’의 깊은 응시
처음부터 끝까지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다. ‘파과’는 누군가에게는 무거운 철학이고,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문학적인 영화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무게를 끝내 이겨낸 건 다름 아닌 배우들이다. 이혜영과 김성철이라는 두 이름은 이번 영화에서 인물 그 자체가 되어, 감정의 결까지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파과’는 노년 여성 킬러라는 낯선 소재를 통해,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 잊혀지는가를 묻는다. 조각(이혜영)은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해온 전설적인 킬러지만, 이제는 소속 조직에게도 버려진 존재다. 그런 조각을 평생 따라다닌 투우(김성철)의 존재는 이 영화가 단순한 킬러 액션물이 아닌, 관계에 대한 영화임을 암시한다.
감정선은 깊지만 형식은 다소 무겁다. 소설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온 듯한 대사들은 아름답지만 때로 이질적이고, 과장된 설정은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상충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인 프레임에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을 그려내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다.
감독 민규동은 과거 ‘허스토리’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인물의 시간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하나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되는 장면들은 때론 혼란스럽지만, 결국에는 인물의 인생 전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 안에서 조각은 단순히 킬러가 아니라, 오랜 시간 자신을 지우며 살아온 한 인간으로 되살아난다.
무엇보다도, 이혜영의 연기는 단연 압도적이다. 그녀의 얼굴은 그 자체로 서사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무게, 한때는 필요했지만 지금은 버려진 존재의 고독, 그것을 말없이 체현하는 그녀의 눈빛과 표정은 관객의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든다. 김성철의 투우 또한 단순한 대척점이 아닌, 조각과 닮아 있는 또 다른 그림자이자 미래다.
이 외에도 조각의 어린 시절인 손톱을 연기한 신시아, 조각의 과거를 함께 만든 류선생 역의 김무열까지, 조각이라는 인물을 다층적으로 조형하는 데에 있어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파과’는 인물에 의해 완성되는 영화다.
결국 이 영화는 쓸모없는 존재로 분류된 자들에 대한 서사다. 그리고 그들의 삶 또한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수 있다는, 작지만 단단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사라질 가치가 없는 것들이 아닌, 존재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파과’는 그렇게 관객에게 천천히 말을 건넨다.
출처 :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