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가’ 판소리 활용이 큰 매력, 창작 뮤지컬의 반란 혹은 답습
창작뮤지컬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그 누구도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힘을 썼는지는 관객이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그들의 노력은 결과물로 보여주는 것이지 감정에 호소해서는 안된다. '아랑가' 역시 마찬가지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기대주로 떠올랐던 '아랑가'는 속 빈 강정처럼 아쉬움만 가득 남기며 창작뮤지컬의 오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했다.
뮤지컬 '아랑가'는 435년 을묘년 백제를 배경으로 개로왕과 도미장군, 그의 아내 아랑의 이야기를 담는다. 개로왕은 도림의 계략에 빠져 충신이었던 도미 장군의 아내인 아랑을 탐한다. 이후 그는 겉잡을 수 없이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도미 장군과 아랑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아랑가'의 가장 큰 매력은 판소리의 활용이다. 도창(導唱)은 극 중 백제 백성부터 예언가까지, 다양하게 변모한다. 때로는 난해한 이야기를 단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설자가 되기도 한다.
뮤지컬 '아랑가'가 도미설화를 다룬 이야기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 News1star/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도창의 활약은 '아랑가'를 가득 채운다. 그는 극중 상황을 현실감 있게 전달하는 동시에 자유자재로 이야기의 속도를 조절한다. 도창은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서사에 속도감을 더하거나 필요한 순간에는 속도를 늦추며 완급조절을 능수능란하게 펼친다.
이번 공연에서 도창 역은 국안인 박인혜와 정지혜가 맡았다. 박인혜는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관객을 압도하며 한이 서린 판소리로 극의 몰입도를 한층 더 끌어 올린다. 그의 연기는 극중 긴박한 상황을 엿보게 하며 관객의 시선을 단 번에 사로잡는다.
확실히 판소리와 뮤지컬의 조화는 옳았다. 판소리는 '아랑가' 만의 색을 낼 수 있는 힘으로 작용했다. 판소리가 빠진 '아랑가'는 무채색에 가깝지만 판소리가 있어 더 입체감 있게 채색됐다. 여타 뮤지컬과 비교해도 눈에 띄는 매력 포인트다.
뮤지컬 '아랑가'가 창작뮤지컬의 한계를 보여주며 아쉬움을 더했다. © News1star/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아랑가'는 아쉬운 점이 더 많다. 창작뮤지컬의 한계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도미설화를 모티브로 했지만 '아랑가'=도미설화라는 공식이 성립돼서는 안 된다. '아랑가' 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도무지 작품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덕분에 캐릭터의 존재감 역시 아쉽다. 배우들의 열연은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지만 캐릭터의 매력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외려 독창의 존재감이 더 크다. 독창이 한 번 무대를 휩쓸고 가면 다른 인물들의 존재감은 한 없이 떨어진다. 비교 대상이 생겨 버린 것이다. 결국 남는 건 독창뿐이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흠 잡을 데가 없다. 부족한 서사는 배우들이 채웠다. 개로왕으로 분한 강필석은 사랑에 빠진 사내의 환희(歡喜)와 욕망에 사로잡혀 한 나라를 파멸로 이끌고 간 왕의 광기(光氣)를 표현해냈다. 그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인물의 상처를 무대에 풀어내며 개로왕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했다. 고구려 첩자 도림으로 분한 이정열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그의 농익은 연기는 도림을 향한 관객의 분노를 최고치로 끌어 올렸다.
'아랑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실상 그 안을 속 빈 강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창작뮤지컬이 그러하듯 '아랑가' 역시 시행착오를 피해가기는 어려웠다. 이미 리딩공연을 거친 뒤 본 공연을 치렀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가득하다. 창작뮤지컬 자체가 워낙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듬어지는 경향이 있다 보니 때로는 그것이 면죄부처럼 치부되기 십상이다. '아랑가' 만은 다르길 바랐지만 결국 같은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뉴스1스타 백초현 기자